나만의 애국가가 된 이방인의 노래
스무살, 지금부터 30여년 전 처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 나만의 애국가처럼 듣던 곡이 있다. Sting의 'Englishman in New York'이다. 당시 이 곡에서 나오는 퍼커션과 칼진 목소리, 가사의 외로움까지 내 생활이 이 곡을 닮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자리잡은 기억으로 지나온 시간 속에서 이제 이 곡은 굵직한 자리매김을 하고 나의 소중한 음악이 되었다.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의 발견
1987년 발표된 이 곡은 원래 영국인 퀸틴 크리스프(Quentin Crisp)의 뉴욕 생활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내게는 한국인 청년이 미국 땅에 처음 발을 디디며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을 대변하는 곡이 되었다. "I'm an alien, I'm a legal alien, I'm an Englishman in New York"라는 후렴구는 마치 "I'm a Korean, I'm a legal alien, I'm a Korean in America"로 바뀌어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당시 내가 느꼈던 것은 단순한 향수병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이곳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 법적으로는 합법적인 체류자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언어의 장벽, 문화의 차이,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는 미묘한 소외감이 일상을 지배했다.
무채색의 고독한 슈트 나의 로망이 되다.
뮤직비디오 속 Sting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뉴욕의 겨울 거리를 걷는 그의 롱코트 차림새가 인상적이다. 회색빛 도시 속에서 그가 입은 어두운 톤의 슈트와 긴 코트는 단순한 의상이 아니라 도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징이었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가진 무채색 모노톤의 미학과 그 안을 걸어가는 남자의 고독한 실루엣이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당시 내게도 슈트는 특별한 의미였다. 한국에서는 입을 일이 거의 없던 정장이 미국에서는 일상이 되었다. 캠퍼스를 벗어나 인턴십을 하거나 면접을 보러 갈 때면 어색한 손길로 넥타이를 매고 구두끈을 조였다. 그 과정에서 슈트는 단순한 옷이 아니라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도구가 되었다.
특히 뉴욕의 겨울, 긴 코트를 입고 맨해튼 거리를 걸을 때면 마치 내가 이 곡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차가운 바람에 코트자락이 휘날리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어색한 유학생이 아니라 이 도시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회색 빌딩들 사이로 스며드는 겨울 햇살과 어우러진 모노톤의 풍경 속에서, 나의 어두운 코트는 이 도시와 조화를 이루며 소속감을 주었다.
슈트와 롱코트는 이방인에게 일종의 갑옷 같은 존재다. 그것을 입으면 내면의 불안함을 감출 수 있고, 동시에 이 도시의 규칙에 맞춰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Sting이 노래한 영국 신사의 품격과 뉴욕 도시인의 실용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에 적응해나간다.
음악적 완벽함 속에 담긴 외로움
Sting의 보컬은 이 곡에서 특별한 힘을 발휘한다. 그의 목소리는 칼처럼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럽고, 자신감에 찬 듯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하다. 이는 곡의 주제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이방인으로서의 당당함과 동시에 느껴지는 고독감을 음성으로 표현해낸 것이다.
퍼커션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건조하고 반복적인 리듬은 도시의 기계적인 일상을 연상시킨다.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을 리듬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퍼커션은 내가 미국에서 경험했던 일상과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하지만, 어딘가 차가운 그 리듬 속에서 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가사 속에 숨겨진 철학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라는 가사는 단순해 보이지만 심오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과정이다. 현지 문화에 적응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모든 이방인이 직면하는 딜레마다.
내가 미국에서 보낸 초기 시절을 돌이켜보면, 이 딜레마는 일상의 모든 순간에 존재했다.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미국인처럼 행동하려 노력하면서도 한국인으로서의 나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어느 쪽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얻은 깨달음
30여년이 흐른 지금, 나는 이 곡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젊은 시절 이 곡에서 느꼈던 외로움과 소외감은 이제 성숙한 이해와 수용으로 바뀌었다. 이방인이라는 것은 단순히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Sting 역시 이 곡을 통해 단순한 향수나 소외감을 표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방인으로서의 독특한 시선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창조적 에너지를 노래한 것이다. "I'm an Englishman in New York"는 한계가 아닌 가능성의 선언이었다.
음악이 주는 위안과 힘
이 곡이 나에게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과 일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음악이 가진 보편적인 힘, 즉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 인간의 공통된 감정을 건드리는 능력 때문이다.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은 비단 다른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면에서는 이방인이다.
새로운 직장에 들어간 사람, 새로운 도시로 이사한 사람, 새로운 인생의 단계에 접어든 사람들 모두 이 곡에서 공감대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좋은 음악이 가진 힘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보편적인 감정으로 승화시키는 것.
현재의 의미
지금 이 곡을 들으면 과거의 나를 만나는 기분이 든다. 불안하고 외로웠지만 동시에 희망에 찬 젊은 나를. 그리고 그 시절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 외로움과 소외감이 결국 너를 더 강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Englishman in New York'는 이제 단순한 추억의 곡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여정에서 마주치는 모든 변화와 도전에 대한 나만의 응답이 되었다.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이 주는 고유한 시선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창조적 에너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라는 메시지를 삶의 지침으로 삼는 것.
마치며
음악은 시간을 초월한다. 30여년 전 처음 들었던 이 곡이 지금도 여전히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진실 때문이다. 이방인으로서의 경험, 정체성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들.
Sting의 'Englishman in New York'는 내게 있어 단순한 곡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특별한 순간들을 함께한 동반자이자, 나 자신을 이해하는 열쇠이며,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주는 스승이다. 이 곡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나의 소중한 음악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