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row is my Kingdom - by Tez Cadey featuring GuitK
50대, 흔히 '인생의 황금기'라 하지만, 제게는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방황의 시기였습니다. 세상의 전부였던 부모님이 연이어 제 곁을 떠나셨을 때, 그 아픔은 저를 극심한 좌절의 나락으로 떨어뜨렸습니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던 그때, 우연히 한 곡의 노래가 제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바로 ‘Sorrow Is My Kingdom’. 먹먹하면서도 애절한 멜로디는 마치 저의 슬픔을 그대로 담아낸 듯했고, 그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은 저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며 잊고 있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주었습니다.
슬픔의 한복판에서 마주한 나의 왕국
부모님의 부재는 제 삶의 가장 큰 기둥이 사라진 것과 같았습니다. 마치 뿌리 뽑힌 나무처럼 휘청거렸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미래는 막연한 어둠으로만 보였습니다. 슬픔은 저를 집어삼킬 듯이 거대해 보였고, 저는 그 슬픔 속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그때 ‘Sorrow Is My Kingdom’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슬픔이 나의 왕국이라고?’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슬픔은 당연히 피하고 부정해야 할 감정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노래를 듣고 가사를 곱씹을수록 그 의미가 점차 선명해졌습니다. “슬픔은 부정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때로는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왕국’이 되어주는 내면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제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저는 슬픔을 저항하고 밀어내려 애썼지만, 이 곡은 오히려 슬픔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슬픔은 나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영역, 즉 ‘나의 왕국’이 될 수 있다는 역설적인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제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슬픔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그 슬픔과의 싸움에서 벗어나 작은 평화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집은 부모님이 계시던 유일한 공간이었기에, 그분들의 부재 후 집은 제게 텅 빈 공간, 혹은 슬픔이 가득한 장소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 곡은 집이라는 공간을 넘어, 제 내면의 ‘왕국’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슬픔으로 가득 찬 제 마음속이 바로 저의 왕국이며, 그 안에서 저는 저 자신과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요. 이는 제가 그동안 외면하고 싶었던 감정들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들었습니다. 저의 정체성을 슬픔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통해 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고통 속에서 피어난 연대와 희망의 씨앗
고통은 혼자 견뎌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곡은 “누군가의 존재가 있어야만 슬픔을 견뎌낼 수 있음”을 노래합니다. 이는 인간의 본질적인 연약함과 함께,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연대의 중요성을 드러냅니다. 저 역시 부모님이라는 든든한 존재가 사라진 후, 한없이 약해진 저 자신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혼자서는 이 거대한 슬픔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요. 친구들의 따뜻한 위로, 가족들의 조용한 지지가 없었다면 저는 아마도 슬픔의 왕국에 영원히 갇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곡이 전하는 메시지 중 가장 저를 흔들었던 부분은 바로 ‘어둠을 뚫는 희망과 회복’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piercing night”를 뚫고 고지(빛)를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는, 마치 제 현재 상황을 묘사하는 듯했습니다. 캄캄한 밤처럼 느껴지던 제 삶 속에서, 저는 빛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습니다. 노래는 제가 느끼는 고통이 보편적인 것임을, 그리고 그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인간 정신의 결연함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울룩불룩한 삶의 양극에서 모두가 슬픔을 가지고 있다는 깨달음은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은 혼자만의 고통에서 벗어나 세상과 연결되는 느낌을 주었고, 작은 용기가 되었습니다.
멜로디는 고통 속에서 서서히 솟아나는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먹먹하고 애절하게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고조되는 감정선은 결국 슬픔을 넘어설 수 있다는 희미한 희망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슬픔에 잠겨있는 저에게, 이 곡은 ‘그래, 슬퍼해도 괜찮아. 하지만 그 슬픔 속에서 너는 더 강해질 수 있어’라고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저는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그 눈물은 더 이상 좌절의 눈물이 아닌, 회복을 위한 첫걸음임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내면에서 피어나는 작은 의지를 발견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아픔을 넘어, 나의 왕국을 재건하다
‘Sorrow Is My Kingdom’은 슬픔을 단순히 부정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며 나아가려는 과정을 그린 곡입니다. 이 곡이 저에게 선물한 가장 큰 깨달음은 바로 ‘집’의 의미였습니다. 물리적인 집이 아닌, 제 마음속의 가장 소중하고 위대한 왕국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요. 슬픔과 고통이라는 시련을 통해 저는 비로소 제 자신을 온전히 마주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노래를 들으며 저는 제 삶의 방향을 다시 설정했습니다. 밤샘과 불규칙한 생활을 줄이고, 저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잠 못 들던 밤의 무기력함은 조금씩 사라졌고, 만성 피로도 차츰 나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부모님의 빈자리는 여전히 크지만, 이제는 그 슬픔이 저를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를 더 성숙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습니다. 슬픔은 저의 왕국이 되었고, 저는 그 왕국의 주인이 되어 슬픔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날 저는 여전히 ‘Sorrow Is My Kingdom’을 즐겨 듣습니다. 이 곡은 제게 슬픔을 마주할 용기를 주었고,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50대의 방황은 끝났습니다. 저는 이제 제 내면의 왕국을 굳건히 지키며, 더욱 단단하고 지혜로운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깊은 슬픔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이 곡이 여러분에게도 따뜻한 위로와 새로운 시작의 용기를 선물해주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슬픔 속에서 가장 소중하고 위대한 왕국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