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술자리의 끝은 늘 같은 결말로 이어졌다. 새벽녘, 쓰린 속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몸은 천근만근이고, 머릿속은
아직 술기운이 가시지 않아 멍하다. 그럴 때면 본능처럼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 있었다. 사무실 앞 골목 끝, 간판 불빛조차 희미한 작은 콩나물 국밥집. 겨울이면 김 서린 창 너머로 퍼져 나오는 따끈한 국물 냄새가 나를 유혹했다. 그리고 그 국밥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언제나 같은 안도감을 느꼈다.
그곳의 콩나물 해장국은 화려하지 않았다. 맑은 국물에 콩나물, 파, 매콤한 고춧가루, 그리고 살짝 풀린 노른자 하나. 그러나 그 단출한 한 그릇이 내게는 세상 어떤 고급 음식보다 값졌다. 속을 찌르는 듯한 쓰라림이 한 숟갈, 두 숟갈을 넘기며 서서히 풀리고, 몸속 어딘가에서 ‘괜찮다’는 신호가 오는 듯했다.
그 국밥집에는 특별한 메뉴도, 인테리어도 없었다. 하지만 그곳은 내게 단순한 식당이 아니었다. 오롯이 나를 위해 준비된 아지트였고, 내 몸과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피난처였다. 술자리에서 과했던 나를, 그리고 그 과함에 스스로 미안해진 나를, 따뜻한 콩나물 국밥 한 그릇이 용서해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콩나물 해장국은 그 시절 내게 ‘해장’이라는 기능적 의미를 넘어선, 위로의 음식이었다. 그 한 그릇을 마주하면 밤새 시끄럽던 술자리가 차분히 정리되고, 몸속에 쌓였던 술기운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때로는 그런 단순한 위로가 새 하루를 버틸 힘이 되어 주었다.
콩나물의 효능
그런데 돌이켜보면, 왜 콩나물 해장국은 그렇게 숙취에 잘 들었던 걸까? 단순히 따뜻한 국물 때문만은 아니었다.
첫째, 콩나물에는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하다. 이 성분은 간에서 알코올을 분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숙취의 주범인 아세트알데히드 해독을 촉진한다. 그래서 콩나물 국밥 한 그릇이 음주 후 몸의 회복을 앞당겨주는 것이다.
둘째, 콩나물은 90% 이상이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어 알코올로 인한 탈수를 완화한다. 특히 따뜻한 국물 형태로 섭취하면 위장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수분을 효과적으로 보충할 수 있다.
셋째, 콩나물에는 비타민 C와 비타민 B군이 풍부해 피로 회복에도 도움을 준다. 특히 콩나물의 뿌리 부분에는 숙취 해소에 좋은 영양소가 많이 몰려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콩나물 국밥에 들어가는 고추, 마늘, 후추는 땀을 나게 하고 혈액순환을 돕는다. 그 덕분에 국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면, 온몸에 묵직하게 남아 있던 술기운이 빠져나가는 듯한 개운함을 느끼게 된다.
나를 사람답게 돌려주는 한 그릇
지금도 종종 그 국밥집을 찾는다. 술자리가 없던 날에도, 괜히 속이 허전한 날이면 그곳의 콩나물 해장국이 생각난다. 어쩌면 나는 콩나물 국밥의 맛이 아니라, 그 한 그릇에 깃든 추억과 위로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콩나물 국밥은 내게 단순한 해장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날 숱한 아침을 견디게 해준 작은 용기였고, 밤새 흔들린 마음을 잠시나마 다독여 준 친구였다. 그 한 그릇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일어나 하루를 버텼고, 다시 웃을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그런 음식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쓰린 속과 마음을 잠시나마 달래 주는 그 음식. 그리고 혹시 지금 그 음식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다음에 술기운에 지친 새벽이 찾아오면 콩나물 국밥을 떠올려 보길 바란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켜주는 따뜻한 한 그릇. 오늘도 그 소박한 국밥 한 그릇이, 누군가의 새벽을 다시 사람답게 만들어 주길 바라며.
